허성배 주필

나라마다 특유의 민족정신이나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정신을 바탕으로 국민이 단결하고 있으며, 이를 자긍심으로 삼고 있다.
이를테면 영국인에게는 Gentleman Ship이라 하여 신사도(紳士道) 정신을 자랑하고 있으며, 미국인은 Frontier Spirit 즉 개척정신을, 중국인들은 광활한 대륙인답게 이른바 만만띠[慢慢的] 정신이 그리고 일본인들은 야마또다마시[大和魂]를 내세워 일본, 일본인을 위하는 일이라면 조건 없이 똘똘 뭉치고 있음을 잘 볼 수 있다.
이같이 나라마다의 상징적인 정신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새삼스럽게 사족을 달아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우리나라, 우리민족에는 어떠한 상징적 정신을 자랑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필자가 그동안 사회 각계각층 인사를 대상으로 실시해 온 여러 교육현장에서 이 같은 질문을 해 보면 모두 웅성거리고 있을 뿐 이것이다 라고 속 시원히 말하는 사람이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우선 남의 나라, 남의 민족정신은 곧잘 말하면서도 내 나라 내 민족을 내세울 상징적 정신은 선뜻 말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에 필자는 우리에게는 훌륭한 ‘선비정신’이 있다고 서슴없이 주장하고자 한다.
見利思義, 見危授命은 우리네 선비정신을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다.
아무리 나에게 이로운 것을 보아도 의리에 어긋남이 아닌가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서슴없이 목숨을 바친다 하니 이에서 더 어떠한 말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의 역사를 통해 볼 때 黃喜 정승이 그러했고, 成三問이 그러했으며, 栗谷 李珥가 또한 그러하며, 忠武公 李舜臣이 그러했다. 이 밖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비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선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토록 많은 외침을 받았으면서도(어떤 학자는 개국 이래 9백 32회의 외침을 받았다고 함) 우리 민족은 끝내 살아남았으며, 오늘날은 단일 민족으로서 세계의 여러 강대국들과도 버젓이 국력을 견주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선비정신이 일제 치하에서 민족혼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저들은 조선의 선비란 글줄이나 안답시고 일은 하지 않고 백성들을 착취해 온 계급이라고 왜곡되이 가르쳤으며, 우리는 일본인들의 그 말을 믿고 선비를 잘못 인식해 왔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 고고한 선비정신이 희석돼 가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정의(正義)를 위해서는 일신의 안위 따위는 돌보지 않고 죽음 앞에 당당하게 맞섰던 선비들, 불사이군(不事二君)의 굳은 절개로 벼슬자리도 헌 신짝처럼 내던지고 은둔생활로 끝내 여생을 마쳐버린 선비들이 그 몇몇이었던가.
오늘날 여러 사극을 통해, 그 높은 정신을 가르쳐 주고 있건만 이를 거울삼으려는 후예(後裔)들을 찾아보기 어려우니 그저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못났을 때는 돌보지 않다가 쓸 만해 졌으니 챙기고, 작을 때는 버렸다가 커졌다고 눈독을 들이며, 어제까지 호형호제(呼兄呼弟)하던 의리가 오늘은 온데간데없는, 그리고 철석같은 약속도 손바닥 뒤집듯 하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지금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고 있다.
이 나라가, 이 사회가, 이 고장이 영영 오늘에 사는 기성인들만의 것은 아니다. 아직은 우리 기성세대를 쳐다보며 티 없이 사는 내일의 주인공인 어린 새싹들을 위하여 우리 민족의 자긍심인 불후(不朽)의 선비정신을 우리 모두 기필코 되찾아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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