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안하는 국회의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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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 안하는 국회의원들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4.01.0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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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아무리 정치권이 개판이라지만’·‘장세환 의원의 불출마를 보며’·‘뻘짓 일삼는 정치권’·‘의원님들, 본업에나 충실하세요’·‘담뱃값 인상, 새정연은 야당도 아니다’·‘너희가 국회의원이냐1’·‘너희가 국회의원이냐2’·‘값진 죽음보다 사는 가치가 우선’·‘정치인의 출판기념회’·‘기소된 4명의 전북 국회의원들’·‘가장 핫한 전북 국회의원1’·‘가장 핫한 전북 국회의원2’·‘민주당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혹 눈치챈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위에 열거한 것은 지난 10년간 내가 국회의원을 주인공으로 쓴 글들의 제목이다. ‘장세환 의원의 불출마를 보며’와 노회찬 의원의 자살에 대해 쓴 ‘값진 죽음보다 사는 가치가 우선’만 빼고 성폭행·배임·횡령·금품수수·뇌물 따위 범죄 혐의이거나 공직선거법 위반, 탈당과 함께 당을 옮긴 국회의원들을 성토한 글이다.

위의 글들은 대부분 국회의원 개인 비리나 범죄 혐의에 국한된 내용이지만, 이번엔 좀 다른 이야기다. 지난해 12월 2일 법정시한을 넘겨 19일 만에 통과한 예산안 늑장 처리도 있지만, 여기선 12월 12일부터 시작된 내년 총선 예비후보 등록과 관련한 이야기다. 예비후보로 등록하면 후원회 설립, 선거사무소 설치, 명함·홍보물 배포 등을 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많은 예비후보들이 등록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바야흐로 4·10 총선 레이스가 시작됐지만, 그러나 맙소사! 선거구 획정도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거 1년 전이라는 법정 기한을 훌쩍 넘긴 지 8개월이나 됐는데도 구랍 7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간사와 위원 한 명이 각각 참여하는 2+2 회의를 열어 선거구 획정 논의를 시작했다. 말할 나위 없이 국회의원들이 밥값을 제대로 안한 탓이다.
그나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의가 구랍 5일 기존 선거구 가운데 6곳을 쪼개고, 6곳을 통합하는 내용의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데 따른 것이다. 선거구획정위의 안을 보면 6개 선거구가 통합되고 6개 선거구가 분구되어 결과적으로 서울·전북에서 각 1석이 줄고 인천·경기에선 각 1석이 늘게 된다.
이는 여야의 선거구 협상을 위한 초안의 성격일 뿐이다. 정개특위 협의를 거쳐 확정될텐데, 이미 더불어민주당이 ‘여당 편향적’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협상이 순조로울지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언제 합의가 이루어져 선거구가 확정될 지도 알 수 없는 상태다. 그야말로 ‘깜깜이 선거’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형국이라 해도 국회의원들은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국회의원들이 밥값을 제대로 안한 탓이다. 이 제도는 현역 정치인과 정치 신인, 원외 후보들 사이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려 2004년 도입됐지만, 번번이 법대로 되지 않고 있다. 국회가 선거구 획정을 방치한 게 처음이 아니라서다. 21대 총선은 선거 39일 전, 20대 총선은 42일 전, 18·19대 총선은 각각 47일, 44일 전에야 선거구를 획정했다.
한겨레 사설(2023.12.11.)에 따르면 “국회가 매번 선거구 획정을 미루는 이유는 정쟁 탓도 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현역 의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미루는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 일부 출마 예정자들은 유권자가 누구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로 선거전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현역 국회의원들은 다르다. 현역 국회의원들은 선거구가 갑자기 바뀌어도 높은 인지도 덕을 볼 수 있지만, 정치 신인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여야의 ‘벼락치기’ 선거구 획정 관행이 결국 현역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지키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내가 밥값 ‘못하는’이 아니라 ‘안하는’ 국회의원들이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계 조정 지역에서 처음 나서는 한 출마자는 “기존 정치인들은 이미 지역 주민 정보와 네트워크가 탄탄하다. 그러나 신인들은 노력과 시간, 비용을 들여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는데, 지역구가 갑자기 바뀌면 그동안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간다. 제발 법대로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분구 예상 지역에 출마하려는 한 인사는 “공정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예비후보제도가 무색할 정도”라고 말했다.
선거관리위원회 선거사무에도 어려움이 따름은 말할 나위 없다. 우선 21대 총선 선거구를 기준으로 예비후보자 등록을 받은 뒤, 추후 선거구가 획정되면 변경안을 토대로 다시 신고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을 두 번 하는 셈이다. 지난 총선 때도 예비후보자가 ‘기존 지역구의 전부 또는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구’ 중 출마지를 선택해 선관위에 다시 신고하도록 했다.
경기 동두천·연천 지역 출마를 준비중인 국민의힘 소속 손수조 리더스클럽 대표는 “(현역의원들 입장에선) 획정을 늦추면 늦출수록 신인의 발목을 잡아 놓을 수 있다. 정말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치신인 예비후보로서 당연히 행사하도록 되어있는 선거운동에 제약을 받게 되는, 그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언제까지 이럴 건지, 제대로 밥값 하는 국회의원들을 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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