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들려나가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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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들려나가는 나라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4.01.3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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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1월 18일 강성희 진보당 의원(전북 전주을)이 대통령 경호원들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팔다리가 들려 끌려 나가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살고 있는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 행사중 강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손을 잡고 “국정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다가 벌어진 일이다.
보도를 종합해보면 진보당은 “입법부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라고 반발했다. 반면 대통령실은 “제도권 내의 국회의원이 이런 일을 벌인 것은 금도를 넘어선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강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경호원들이 제지를 할 만한 그런 것(행동)은 전혀 없었다”며 경호원들의 ‘과잉 경호’였다고 비판했다.

요컨대 대통령이 참여하는 행사의 경우 해당 장소에 입장하는 전체 참석자들이 금속탐지기 등을 통한 보안 조처를 거치며 엄격한 통제를 받기 때문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도 없었다는 것이다. 강 의원은 “경호원들이 (나를) 강제로 끌어내는 과정에서 안경을 빼앗기까지 했다. 대통령실은 정중히 사과하고 경호처 책임자를 문책하라”고 말했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도 “‘국정 기조 바꾸라’는 말 한마디가 대통령의 심기에 그렇게 거슬리게 들렸냐”며 경호처장 파면을 주장했다. 또한민주당은 1월 21일 대통령 경호처의 ‘강성희 진보당 의원 과잉진압’ 논란을 ‘국회의원 폭력 제압 사태’로 규정하며 진보당·정의당 등 다른 야당과 함께 대통령실 규탄 결의안을 공동 발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강 의원이 소리를 지르면서 대통령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잡은 손을 자기 쪽으로 당기기까지 했다. 경호처에서 계속해서 손을 놓으라고 경고했다”며 “(강 의원은) 대통령이 지나간 뒤에도 계속 고성을 지르면서 행사를 방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당연히 경호상의 위해 행위라고 판단될 만한 상황이었고 그래서 강 의원을 퇴장 조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국회의원의 입을 막고 사지를 들어 행사장 밖으로 내보내는 수준의 조치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추가 질문에는 “분리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손나팔을 만들어 고성을 지르는 상황에서 경호처 입장에서는 당연히 대통령과 행사에 참석한 국민들의 안전에 위해가 가해질 수 있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퇴장 조치를 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1월 23일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이 국회 운영위원회를 열어 대통령 경호처의 강 의원 강제 퇴장 사건과 윤석열 대통령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퇴 요구 등 ‘당무 개입’을 비판했다. 민주당 김한규 위원은 “(경호처가) 강 의원의 행사 참여라는 권리 행사를 방해했기 때문에 충분히 형사처벌 대상까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의당 배진교 위원도 “강 의원 강제퇴장 조처는 국회의원 300명 전체에 대한, 국회에 대한 모독”이라며 “운영위가 대통령의 사과와 경호처장 파면을 결의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상혁 위원은 “이 실장이 한 위원장을 만나 사퇴 요구를 했다는 건 명백한 당무 개입이다. 이 문제의 심각성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유에 적나라하게 적시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합의 없이 회의가 열렸다며 운영위에 불참했다. 여당 운영위원들과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불참하면서 국회 운영위원회는 16분 만에 끝나버렸다. 국회의원들 스스로 국회의 기능과 권위를 발로 차버린 모습만 보여준 셈이 되고 말았다.
1월 25일엔 김진표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에서 강 의원 관련 대통령실의 과잉 경호 논란을 두고 “대통령 경호원들의 이와 같은 과도한 대응이 재발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이라며 한 말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고성을 지르며 항의했다.
내가 사는 전주에서 안봐도 될 그런 일이 벌어져 대단히 유감스럽다.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이며 민생이나 경제회복과 전혀 상관없는, 그래서 쓸데없는 일로 국력을 소모 내지 탕진하는 일이 또 벌어진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아 화가 난다. 다시 한 번 ‘어통령’ 시대에 사는 ‘국민적’ 비극과 맞닥뜨려야 하는 ‘지랄 같은’ 일이 벌어져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하필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이란 잔칫날에 “국정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충정’을 보인 강 의원 행태가 좀 아쉽긴 하다. 전주을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잔칫날 손님을 맞는 기본적 자세가 아니라서다. 그렇다고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을 마치 ‘적’처럼 제압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얼마든지 경호원들이 강 의원을 막아서며 거리를 두는 등의 격리도 가능했지 싶어서다.
지금은 ‘각하’ 심기 경호에 유난을 떨다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총맞아 죽은 차지철 경호실장이 설쳐대던 시절이 아니다. 12·12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대통령에 장세동 경호실장 시절도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대한민국은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이 대통령에게 쓴소리(사실은 옳은 소리) 한 마디 했다고 경호원들에 의해 들려나가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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