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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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단어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11.10.1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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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영 규/신문학 전북지회 사무국장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좋은 말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사랑’이라는 단어에 가슴 설레고, 얼굴이 붉어진다.

사람을 사랑하든 자연을 사랑하든 사랑한다는 말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랑’이란 단어는 언제부터 사용돼 왔는가. 정확한 건 잘 모르지만 한국어의 ‘사랑’이란 단어는 원래 ‘많이 생각하다.’ 라는 의미의 한자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즉 ‘사량(思量)’이었다. 한가지의 생각에 얽매여 있기, 그것이 사랑이 되었단다.

이전에 고어에서 사랑은 ‘고임’이었다. 괴다, 고이다. 몽골어에서도 사람과 사랑이 동의어다.

사랑은 사람이다. 사람이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생각,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것이 곧 간절한 사랑인 것이다.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사랑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는 플라토닉 사랑과 에로스적인 사랑이 있다.

이중 플라토닉 사랑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사랑을 모델로 삼는다.

플라톤은 비극작가 아가톤의 연극대회 우승을 축하하는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해 ‘향연’을 썼다.

따라서 플라토닉 사랑은 어떠한 스킨십도 없고 그저 정신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박애(博愛)’정신이다. 흔히 말하는 짝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플라토닉 사랑이라고 한다.

대부분 남녀관계는 플라토닉 사랑에서 시작하여 에로스사랑으로 발전하고 그 후 결혼으로 돌입한다.

반면 에로스적인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이다. 청춘남녀의 사랑이다. 육체적이고 성적인 매력에 매료된 사랑 관계다. 두 남녀가 결혼하여 가정을 만들고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평생 함께 할 사랑을 말한다.

사랑의 ‘정의’는 무엇인가. ‘좋아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물건에 마음이 쏠리어 이를 갖고 싶어지는 감정, 또는 그 감정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행동을 말한다.

그러나 이는 교과서적인 사랑철학이다.

만약 누가 나에게 사랑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난 “존재에 대한 소중함에 눈뜨게 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그저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숨 쉬어 주는 것만으로도, 그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 하나로,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되어지는 것이다.

존재, 그 이상의 것은 없다.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사랑받게 된다.

존재는 사랑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가장 존귀한 선물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

사랑은 경작되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한 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까닭도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랑도 그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사랑은 선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후(事後)에 서서히 경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처럼 쓸데없는 말은 없다.

사랑이 경작되기 이전이라면 그 말은 거짓말이며, 그 이후라면 아무 소용없는 말이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요즘 대부분의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남녀 간 불륜의 사랑을 종종 다루고 있다. 또한 잡지나 신문에서도 그러한 내용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매스컴은 마치 불륜을 인기 있고 유행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한 풍속도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는 그것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아주 현실적인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불륜의 사랑도 사랑일까? 물론 사랑이다. 다만 그 사랑에는 책임과 대가가 따라야 한다.

가을이 소리 없이 깊어가고 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생각도 깊어가고 외로움도 깊어간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 사랑의 계절이다. 어느 계절인들 사랑할 수 없는 계절은 없겠지만, 잎을 떨구고 빈 가지만 쓸쓸하게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면 허허로움과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이란 그리움의 발로이며 그리움은 또 사랑을 낳게 된다. 풍요로운 이 가을, 플라토닉 사랑이든 에로스적인 사랑이든 사랑에 깊이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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