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밥값하는' 지식전달자, 20대논객 노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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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밥값하는' 지식전달자, 20대논객 노정태
  • 투데이안
  • 승인 2009.06.2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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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주목받는 20대의 젊은 논객을 꼽으라면 단연 노정태(27·남)라는 인물이 꼽힌다.

 

대학을 다닐 때 '딴지일보'와 온라인 기자로 활동한 이래 언론과 깊은 인연을 맺어 왔던 그는 지금도 경향신문과 미디어스 등에 칼럼을 쓰며 미국의 정치전문지 '포린 폴리시'의 한국어판 편집장을 맡고 있다. 젊은 논객 노정태씨의 현재는 어떠한가?

우선 그는 지난해 촛불시위 당시의 '여대생 사망설'을 거론했다. 팩트 부족이 만들어낸 소설적 상상력이 방송과 지면을 장식하고 사실과 의견이 뒤죽박죽되며 거짓이 진실을 덮어버린 대표적 예라고 그는 지적한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의 팩트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아요. 몇 개의 사진을 놓고 그 안에서 최대한 팩트를 뽑아내려고 해요. 이 과정에서 무리한 상상력이 끼어듭니다. 의견이 팩트로 둔갑하고 무수한 설들이 난무하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그 이후 불거진 타살설 역시 마찬가지다.

"검찰은 확인되지도 않은 범죄 사실을 언론에 계속 흘렸고, 언론은 그것을 확대 재생산했어요. 정권이 주도하는 전방위적 압박이 노 전 대통령을 고립시켰고 죽음을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되풀이됐어요. 경호원에 대한 수사결과는 사실 확인 후 공개돼야 합니다. 그런데 경찰은 또 다시 언론에 확인되지 않은 '팩트'를 흘리고, 언론은 타살 시나리오를 보도하고,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싶다며 여론재판에 나섰죠.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팩트를 흘리는 경찰, 팩트와 의견을 짬뽕시키며 신뢰를 잃어버린 언론, 언론을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팩트의 떡밥에 흔들리며 진실게임만 좇는 대중들까지 모두가 우리 사회의 불통(不通)을 낳은 '공범이라는 판단'이라고 그는 말한다. 때문에 기사에서의 사실관계가 완벽하고 사실과 의견을 분리해 전달하는 언론이 불통을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중과 권력의 소통을 위해 언론 못지 않게 지식인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회의 복잡다단한 충돌 지점을 명확하게 분석해내야만 하는 책무가 지식인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씨는 '먹물'과 '책상물림'이라는 단서를 지식인에게 갖다 붙이고 험담을 늘어놓는 한국사회 전반의 '반지식인주의' 역시 사회 진보를 위해 극복해야 할 지점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대충 공부한 후 적당히 대중들에게 팔아먹는 자들이 진지하게 배우고 정확하게 쓰고자 노력하는 지식인들까지 도매금으로 반지식인주의의 피해자가 되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반 지식인주의를 퍼뜨리는 자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썩어빠진 지식인 사회'의 고발자인양 행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쉽게' 설명하는 진짜 지식은, 당연한 일인데, '지식인들끼리만 소통'하는 어렵고 딱딱한 내용을 다른 말로 풀어서 설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반 지식인주의를 퍼뜨리면서 책을 쓰고 글을 팔아먹는 것은, 우물에서 물을 떠오면서 그 우물에 침을 뱉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라고 썼다.

특히 최근 한국사회에서 본래의 뜻과 가장 다르게 쓰이고 있는 단어로 '민주주의'를 꼽았다. 오랜 세월과 다양한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선악의 대결에서 한 쪽을 대변하는 지엽적인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선명한 이미지에만 매달려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그릇된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에서는 반 이명박 전선을 그으며 '민주대 반민주'라고 지칭했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 민주주의가 아닌가요? 자신들이 선이고 한나라당은 악인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들먹인거죠. 그런데 민주주의가 그렇게 단순한 단어는 아니잖아요. 최근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시국선언은 좀 달라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당선된 정통성을 가진 이명박 정권의 정책이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이행되고 있다는 비판인거죠."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한 가지 이념으로도 해석해 낼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교육정책에서는 대학 공영화를 주장하고, 경제적으로는 한 일가에 휘둘리지만 않는다면 재벌 그룹의 존재를 인정하며, 국제정치에서는 통일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좌파나 우파, 어느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어요."

우문현답이다. 물리적 나이는 20대지만 그의 말들은 번뜩이는 혜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분명 수많은 독서를 통해 다져졌을 현학적이고 정확한 단어선택과 핵심을 꿰뚫는 판단, 흥미로운 예시, 독창적인 발상이 기자를 감동시킨다. 때문에 '젊은 논객'이라는 수식어에 도저히 가둬지지 않는 그의 깊이를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한참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노정태는 '지식전달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극히 단순한 단어의 조합이지만 기자의 빈곤한 창의력로는 이보다 어울리는 수식어를 찾기 힘들었다. 지식인, 언론인, 또 다른 모습이어도 상관없다. 정확한 사실과 논리적인 의견, 흥미로운 발상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의 소통에 이바지하고 있는 사람, 그것이 노정태의 모습이다. 글을 쓸 때 가장 염두에 두는 점을 물어봤다. 그 대답 역시 지식전달자에 어울리는 현답이다.

"밥값은 하고 싶어요. 내게 주어지는 소중한 지면을 사실과 의견이 뒤섞인 '설'들로 채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 지식전달자로서 앞으로 어떤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일 지 기대할 수밖에 없다. 다음 그의 행보는 무엇일까. 흥미로운 질문에 돌아오는 그는 의외의 진부한 대답을 내놓는다.

"다음 학기에 논문 마무리하면 군대에 가야죠."

그는 "점수 맞춰서"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한 뒤 한 때 고시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내 길이 아니다'라고 생각한 뒤 포기했다. 어릴 때부터 글을 다루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다. 우연히 딴지일보에서 온라인기자로 활동했고 대학 도서관과 20년 넘게 살아 온 부천의 시립서관에서 책을 읽었을 뿐이다. 분명 철학과 사회과학은 물론 문학과 만화까지 아우르는 다독의 세월이 지금의 그를 다져온 밑거름이다.

그리고 군대를 가야 한다. "좀 더 나를 다져놓고 군대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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