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주(一日酒)를 마실까?, 백일주(百日酒)를 마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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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주(一日酒)를 마실까?, 백일주(百日酒)를 마실까?
  • 나병훈
  • 승인 2009.10.1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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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논설위원]아니나 다를까. 적어도 쌀 문제에서 만큼은 기우(杞憂)라고 믿고 싶었던 우리의 일그러진 상도(商道)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수입쌀로 만든 막걸리로 국산 쌀 소비를 늘리려고 버둥대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한심한 일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쌀 막걸리 국제 홍보대사를 자임(自任)하며 쌀 소비촉진을 호소하고 있지만 진즉 이미 돈 되면 애국심마저 내동이치는 이기적 상혼(商魂) 앞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다는 애기다.

글쎄, 쌀 막걸리가 유명 항공사 기내식에 오르고 모 기업체 제품 100만병이 인기리에 팔리면 뭐하랴. 최근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쌀 막걸리 출고량 상위 20위 제조사의 쌀 원산지 현황자료를 보면 말문이 절로 막힌다. 국내산 쌀을 사용하고 있는 곳은 단 1곳에 불과하다는 충격적 보고(報告)다. 95%가 중국, 미국, 태국산 쌀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러한 황당스런 현장의 증언을 접하고도 과연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우리 쌀로 빚은 막걸리 홍보대사라고 외쳐 댈 수 있을까?


적어도 막걸리만큼은 이익만을 좆는 변질된 상혼(商魂)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진정한 우리 막걸리 집은 십리까지 퍼지는 감미로운 누룩향으로 문패가 필요 없다는 옛말이 있다. 소위 막거른 술인 막걸리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서도 등장하고 있듯이 우리 민족과 애환(哀歡)을 같이 해 온 민족혼(惽)이요 민족의 문화(文化) 자체이기 때문이다. 천상시인(天上詩人)으로 한세대를 풍미했던 저 맑은 영혼의 소유자 천 병상 시인도 붓을 들어 막걸리는 하나님의 은총(恩寵)이라고 예찬하지 않았던가?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 천상병 의 “막걸리” 중에서-

그뿐인가? 박목월 시인도 노래했듯이 막걸리는 우리에게 있어서 타는 저녁놀처럼 얼굴을 붉디붉게 달아오르게 하여 배고픔도 힘든 현실도 잊게 해준 친숙한 우리 삶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의 “나그네” 중에서

모름지기 지금의 쌀 막걸리가 쌀 재고감축과 쌀 소비촉진을 위한 소중한 먹거리 문화로 화려한 변신을 하며 수출 길에 오르고, 심지어 편의점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청와대 건배주(乾杯酒)로 나오는 등 국내외적인 식탁문화에 친숙하게 소통(疏通)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국제 홍보팀장이라 자칭하는 대통령 호소도 아니오, 발 빠르게 그에 화답(和答)하며 다양한 제품개발을 쏟아내고 있는 기업이익의 노림수는 더욱 아닐 것이다. 그것은 막걸리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같이 해 온 친숙한 우리의 민족 정서와 식문화의 영향이 주요인이 아닐까?

따라서 모처럼 열풍이 불며 쌀 소비촉진의 효자노릇을 하고 있는 쌀
막걸리가 먹고 나면 뒷골 아프고 역겨운 냄새로 하루해를 견뎌야 하는 악덕 기업의 불법 밀주(密酒) 막걸리로 전략해서는 결코 안 된다. 최근 농진청 연구발표에 따르면 순수 국내 쌀로 전통방법(누룩발효)에 의해 빚은 쌀 막걸리 한 병은 요구르트 100병과 맞먹는 유산균이 들어 있다고 한다. 신라대 모 교수팀은 항암성분까지 있다는 연구발표를 내 놓으면서 쌀 막걸리 농축액이 60%이상의 암균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증명 해 보였다.


그렇다. 모처럼 기사회생하고 있는 슬로우 푸드(Slow Food)로서의 막걸리 웰빙(Welbeing) 식문화가, 일시적 유행이 아닌 진정한 대중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제조.유통 기업들의 자체 정화노력이 지금 필요할 때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쌀 막걸리는 순수 우리 쌀을 사용하여 100일 이상을 숙성 발효시킨 백일주(百日酒)여야 한다. 극단적인 상업이기에 눈먼 기업들이 단 하루 만에 빚어내는 일일주(一日酒)가 지금처럼 판을 치는 막걸리 유통현실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의 막걸리는 설 곳이 없어 질 것이다./나병훈 전북도교육청 농협 지점장(star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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