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리포트
상태바
프라하 리포트
  • 정빈 칼럼리스트
  • 승인 2009.06.29 1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빈(칼럼리스트)
까를교를 아시나요. 혹시 블타바강은 아십니까. 블타바강은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관통하며 흐르는 강 이름입니다. 몰다우강이라고도 합니다. ‘나의 조국’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체코의 유명한 작곡가 스메타나는 블타바강의 아름다운 흐름을 묘사한 교향시 ‘몰다우’를 작곡한 바 있습니다.

까를교는 블타바강에 놓여있는 다리입니다. 까를교는 블타바강 서쪽의 왕성(王城)과 동쪽의 상인거주지를 잇는 최초의 다리로 보헤미아왕 카를 4세 때(1346∼1378) 건설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자동차는 다닐 수 없고 보행자만 건널 수 있는 까를교위에는 사시사철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넘쳐납니다.

오래된 다리 위에서 블타바강 양안에 펼쳐지는 프라하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리 양쪽 난간에 세워진 30여개의 성상(聖像)들은 야외 미술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까를교와 블타바강이 아니더라도 프라하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프라하성을 비롯해서 수백년씩의 역사를 간직한 크고 작은 건물들로 인해서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드러난 겉모습 때문만은 아닙니다. 프라하의 내면은 문화예술로 충만합니다. 프란츠 카프카, 카사노바, 모차르트, 드보르작, 스메타나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의 고뇌와 사랑이 스며있는 곳이 바로 프라하입니다.

프라하를 처음 방문했던 때가 2001년이었습니다. 9일 동안의 출장이었는데 첫 날과 마지막 날에는 반드시 프라하에 있어야 했습니다. 나머지 날은 꼭 프라하에 머무르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기에 앞뒤 이틀씩을 제외한 닷새 동안은 체코 주변의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는 일정을 짜서 출발했습니다. 계획대로 ‘보람있는 출장’ 이 아닌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몇 해가 흘렀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프라하의 연인’이 방영되기 시작했는데 내가 본 프라하와 사뭇 달랐습니다. 프라하를 다녀왔지만 드라마속의 프라하를 보고 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뒤늦게야 나무는 보고 정작 숲은 보지 못했던 바보같은 여행을 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동안 ‘프라하의 연인’이 보여준 아름다운 프라하를 보고 싶어 안달을 했습니다. 그냥 스쳐지나 온 것에 대한 반성을 위해서도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다시 간다면 샅샅이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프라하를 여행할 기회가 왔습니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공부도 많이 했고, 빼놓지 않고 보아야할 곳들에 대한 리스트도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계획대로 둘러보았습니다.

전차(트램)를 타고 느긋하게, 다리가 아플 즈음이면 노천카페에 앉아서 여유를 부리면서, 석양과 함께 붉게 물들어가는 프라하성을 바라보기도 했고, 뒤따라오는 관광객들의 걸음에 밀려서 황금소로를 해매기도 했습니다. 유태인 묘지에서 전쟁의 아픔을 느끼기도 했고, 바츨라프광장에서 자유와 민주를 향한 처절한 외침의 메아리를 들어보려도 했습니다.

틴 성당과 구시청사, 성 미쿨라셰 성당, 골스킨스키 궁전 등 다양한 건축물들의 묘한 조 바라보며 로마네스크와 바로크, 로코코양식의 건축물들이 지니는 특징들을 이해해보려고 안간힘도 써보았지요.

그리고 다시 프라하를, 체코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체코는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의 3분의1 정도의 면적을 지닌, 남한보다 조금 작은 나라입니다. 프라하는 인구 117만명으로 서울의 9분의1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체코를, 프라하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1년에 무려 1억명이 넘는답니다. 현지 유학생이 농담처럼 제게 한 말이 실감이 가는 대목입니다. “아무 때나 체코의 국경을 모두 봉쇄하고 사람들을 분류한다 해도 체코에는 체코인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을 것이다.”는 것이었습니다. 1년 동안 관광수입만도 무려 5백억달러나 된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은요? 2007년 1년 동안 우리나라를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은 6백만명이 채 되지 못하고, 관광수입은 100억불이 되지 않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체코국민 한 사람이 1년에 9명꼴의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해서 5천달러 이상의 관광수입을 올리는데,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은 1년에 0.12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해서 210달러도 못되는 관광수입을 거둔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좀 실감이 나실겁니다. 체코가 얼마나 관광대국이고 대한민국이 얼마나 관광소국인지를.

왜 갑자기 체코와 대한민국을 비교하면서 기를 죽이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체코가 오늘날 관광대국으로 자리 잡은 바탕은 옛것을 소중히 간직한 때문이고, 대한민국이 관광소국으로 전락한 것은 옛것을 함부로 다뤘기 때문입니다. 프라하에는 2-3백년 된 건물들이 넘쳐나지만, 서울은 수십년도 되지 않은 건물들도 마구 헐어서 새로 짓기에 바쁘기만 합니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는 불과 100년 전 쯤 조상들이 살았던 곳에서 후손들이 살고 있는 제대로 된 초가집이나 기와집이 한 채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여의도의 빌딩숲을 보러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을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비록 구린내가 나더라도 한국인의 토속적인 생활이 남아있는 기와집이나 초가집이라야 외국인 관광객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제 아셨습니까. 체코와 대한민국을 비교하면서 기를 죽인 이유를. 늦지 않았습니다. 수백년 전 조상들이 지은 건축물들을 잘 보존해온 것만으로도 관광대국이 된 체코처럼, 우리도 굴뚝없는 산업인 관광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 것들을 잘 보존해야만 합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