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빨고 싶은 어머니의 젖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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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빨고 싶은 어머니의 젖꼭지
  • 김승연 서문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2.12.21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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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사형수가 교수형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교수대에 오른 사형수에게 집행관이 물었습니다. “너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 사형수는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예, 제 마지막 소원은 어머니의 젖꼭지를 한 번 빨고 싶습니다.” 사형수의 마지막 소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주게 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형수의 마지막 소원치고는 참 특이한 그 소원을 집행관은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사형 집행 전에 그의 어머니를 모셔 와야 했습니다.

  이 연락을 받은 어머니는 떨리는 마음으로 사형수 아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사형장에 도착한 어머니는 아들의 마지막 죽음 직전에 아들의 소원인 젖꼭지를 빨게 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교수대로 다가갔습니다. 아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젖을 빨고 싶습니다.”

 

  다 늙은 어머니는 생각했습니다. “ 우리 아들이 내가 얼마나 그리웠으면 마지막으로 이 에미의 젖꼭지를 빨고 싶었을까?” 하여 자신의 가슴을 풀어 아들의 입에다 젖꼭지를 대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들에게 젖꼭지를 물리는 순간 어머니는 갑자기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젖꼭지를 물어뜯은 것입니다. 집행관은 아들의 머리를 잡아채며 꾸짖었습니다. “야, 이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마지막 소원이라고 해서 들어주었더니 어머니의 젖꼭지를 물어뜯다니. 이게 무슨 짓이야? 도대체 이유가 뭐야?”

  그러나 어머니는 이제 몇 분이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아들이 왜 에미인 자신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돌발적인 행동에 대해 원망하지 않고 아들에게 물어뜯긴 젖꼭지의 아픔을 자신의 잘못에 대한 회개로 알고 연신 눈물만 흘리고 서 있었습니다.

 

  집행관에게 야단맞은 사형수는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말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남의 집 물건을 도둑질 해오면 야단을 치시는 것이 아니라, 왜 잘했다고만 칭찬해 주셨습니까? 그리고 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의 학용품을 훔쳐오면 나쁜 짓을 했다고 호되게 책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잘했다고 격려해주셨습니까? 만약 그 때 어머니가 다른 어머니들처럼 혼내주고 매를 때려 나의 나쁘고 못된 짓을 못하도록 습관을 고쳐주셨더라면, 오늘 나는 사형수가 아니라, 사회의 모범시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머니!” 불효막심한 아들만 호되게 야단쳤던 사형집행관은 사형수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무 말도 못하고 모자의 얼굴만 번갈아 쳐다보며 약속된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필자가 어려서 주일학교 다닐 때 전도사님께서 설교시간에 들려준 예화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기억되고 있다는 말은 그 이야기를 교훈 삼아 잣대로 삼고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입니다. 좋은 습관은 제2의 천성입니다.
   오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도덕과 윤리라는 잣대로 잘잘못을 따지고 분별하기 전에, 상식적으로 분명히 잘못된 일임에도 그것을 잘못이라 인정치 않고 묵인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사회적으로 관례가 되고 전례가 되어 합법화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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