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문화 사이’ 원도심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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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문화 사이’ 원도심을 걷다
  • 문공주 기자
  • 승인 2013.05.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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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삶을 다시 한 번 사는 것과 같다. 빛나던 청춘, 애잔한 첫사랑을 마주할 순 없지만 특별한 장소에선 희미했던 영상도 약물에 담근 인화지처럼 선명해진다. 익산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세대에게 익산역 주변은 추억의 장소이다. 변화의 바람에도 구석구석 애틋함이 묻어나는 구도심의 오늘을 더듬어본다.

 

# 새 단장한 거리 ‘추억이 아슴아슴’

 


지난 5월 8일 익산시는 중앙동 특화거리의 새 단장을 마치고 개통식을 가졌다. 익산역 주변의 중앙동 구도심 거리는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익산 지역 상업과 금융,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울 명동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사람이 몰렸던 까닭에 ‘작은 명동’, ‘익산의 명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일대에는 유명브랜드 가게들이 즐비하고 중앙매일시장이 있어 백화점보다 인기를 끌었다. 호시절도 있었지만 신시가지 개발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구도심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익산시가 낙후된 중앙동 일원의 구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역상가번영회를 중심으로 중앙동 특화거리 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이다. 그 결과 곳곳에 경관조명이 설치됐고 양방통행으로 인해 교통 혼잡과 통행불편을 초래했던 거리는 일방통행으로 전환됐다. 복잡한 전신주를 지하로 매설하는 지중화사업과 특색 있는 화강판석과 점토블럭으로 도로를 정비하며 비로소 걷고 싶은 거리로 재탄생됐다.

 


옛 명성만큼은 아니지만 특화거리 공사가 마무리되며 중앙동 ‘젊음의 거리’(신세대길) 역시 차츰 활기를 띠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의류특화시장인 중앙매일시장의 탄력을 받아 차츰 방문객의 유입이 늘고 있는 것.

 


여기에 추억을 불 밝히는 상가들은 예전 그 자리에서 중앙동의 옛 영화를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1969년 문을 연 대한서림은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제일은행과 함께 만남의 장으로 통했다. 더위와 추위를 피해 읽는 즐거움에 몰입할 수 있어 여전히 아날로그적 감성과 책의 향기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늦은 밤이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차는 30여년 전통의 익산역 엘베강도 내밀한 추억과 사색을 일깨우는 장소다. 짜릿한 얼음 생맥주와 1,000원, 1,500원의 값싼 안주는 오로지 익산역 엘베강에서만 만날 수 있다. 내부가 비좁아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며 마셔야 하지만 낯선 객과 거리낌 없이 안주를 나누는 문화도 이곳에선 자연스럽다.

 


20년째 단골이란 한 시민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중앙동의 추억을 엘베강에 오면 다시 느낄 수 있다”며 “맥주를 마신다기 보다 추억을 맛보고 열심히 산 하루를 위로받는 특별한 장소”라고 말했다. 낡은 텔레비전과 좁은 화장실, 기다란 나무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에게선 끊임없이 몽환적인 과거의 것들이 피어오른다.

 


# 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잘 늙은 거리’

 


삼남(뉴타운)극장 앞 젊음의 거리(신세대길)를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황해사에서 국빈반점에 이르는 문화예술의 거리(영정통 길)에 닿게 된다.

 


그 옛날 이리역과 인접한 영정통 길은 시쳇말로 일본인 신시가지였다. 최신 건물이 꽉 들어찬 이곳은 항상 인파와 상품으로 넘쳐났다. 당시로서는 구경하기 힘든 백화점만 해도 풍천양행 등 2곳이나 있었다. 그 외에 요릿집과 여관, 색주가까지 없는 게 없는 거리였다.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면서 한량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아 식민지 시대 최고의 유흥가로 통했다.

 


현재는 몇몇 맞춤형 양복점과 귀금속매장, 가구점만 영업을 하고 있지만 익산시가 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조성 중인 ‘문화예술의 거리’ 사업과 맞물려 ‘잘 늙은 거리’로 영정통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다.

 


이 거리에는 지난해 돌조각 공모전의 우수작품 10여점이 전시돼 있고, 두 달 전 문을 닫았지만 한 때 된장짜장으로 유명했던 국빈반점과 야래향 등 추억의 중식당도 즐비하다. 또, 개방형 찻집으로 누구나 와서 셀프로 차를 마실 수 있는 전통차문화원이 오가는 시민의 쉼터가 돼 주고 있다.

 


전통차문화원 맞은편으로는 등록문화재 제181호인 익옥(익산, 옥구)수리조합 건물이 있다. 1930년 건립된 이 건물은 일본인 농장 지주들이 쌀 생산량을 늘리고자 창설한 곳으로 일제에 의한 우리나라 근대 농업 수탈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며 현재는 익산문화재단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또, 문화재단 옆에는 폐건물을 새롭게 꾸며 만든 ‘어메이징 컬쳐 하우스’가 들어서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업 및 거주, 전시 등 문화예술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레지던스 사업을 추진하는 이곳은 지역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독특한 소품과 작품, 벽화 등 예술인들의 풍취를 느낄 수 있다.

 


한편, 익산문화재단은 5월 25일을 시작으로 6월 1일과 6월 8일 중앙로 문화예술의 거리에서 젊은 예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소품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아트마켓-활짝’행사를 개최한다.

 


13개 참여 팀은 각자 전공과 개성을 살려 액세서리는 물론 생활소품과 예술소품을 선보이며 행사기간 동안 길거리 공연인 도깨비공연과 추억의 8090 음악여행, 딱지치기나 공기놀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돼 또 한번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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