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이 천만 영화가 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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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이 천만 영화가 된 것은
  • 장세진
  • 승인 2014.02.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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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이 개봉 33일 만인 1월 19일 관객 천만 명을 돌파했다. 2월9일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로 1130만 8671명이 극장을 찾았다. 한국영화론 9번째, ‘아바타’까지 셈하면 10번째 ‘천만클럽’ 영화이다. 신인 감독이 이뤄낸 일이라 더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지는 한국영화사의 쾌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변호인’은 어떤 영화인가.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대중일반이 열광하는가? 우선 ‘변호인’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림사건’ 변호인을 맡았던 변호사 시절 이야기가 그것이다. 아다시피 부림사건은 1981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부산 지역 용공조작사건이다.

  감독이나 송우석 역의 배우 송강호 모두 ‘친노무현 색깔’을 경계했지만, ‘변호인’은 일단 그럴만한 전직 대통령을 두었다는 점에서 만족해도 될 영화이다. 사실 역대 대통령중 고(故) 김대중말고 이렇게 그 삶을 모티브로 한 영화를 ‘자랑스럽게’ 만들어도 될 전직은 없었다. 그것이 과언이 아닌 점을 떠올려보면 그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고졸 출신 변호사. “자갈치시장 아줌마란 소릴 들어도 돈 버는 게 억수로 좋다”던 ‘속물 세법 변호사’ 송우석이기에 그가 용공조작사건의 변호인으로 변신하는 것이 ‘노무현 미화’로 보이진 않는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삶을 그대로 그려내는데, 그것을 미화라고 한다면 말이 안 된다.

  송우석은 ‘속물 세법 변호사’뿐만이 아니다. “데모로 세상을 바꿔? 니미 뽕”이라던 평범한 그냥 소시민이기도 하다. 데모를 하면 당연히 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법조인 송우석에게 국밥집 아들 박진우(임시완)의 “데모를 하게 한 사람들은 어떤 벌을 받습니까?”란 반격은 은근하면서도 가열차게 ‘시대’를 환기시킨다.

  인과관계 묘사가 부족하긴 하지만, 그 환기는 결국 송우석을 인권변호사로 거듭나게 한다. 돈 잘버는 부동산 등기 및 속물 세법 변호사에는 불우한 환경의 고졸 출신으로서 사법고시에 패스하기까지 겪었던 세상의 온갖 쓴맛이 또아릴 틀고 있다. 반면 인권변호사로의 변신에는 시대가 있다.

  시대는 1980년대만 있는 게 아니다. 시대는 ‘우리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지’ 추억 삼는 지금도, 대단히 안타깝지만 현재진행형이다. 안녕하지 못했던 시절의 엄혹함을 이 민주주의의 백주대낮에도 체감할 수 있어서다. 보수다 진보다 하며 서로 벌떼같이 달려드는 지랄 같은 세상이 너무 답답해서다.
   ‘변호인’의 대박행진은 그만큼 사회현실과 맞물린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갈망하는 대중일반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거기에 사회성 강한 영화인데도 곳곳에서 콧등을 시큰하게 하는 감동은 이른바 뒷심의 단적인 예다. 예컨대 재판정에서 진우 등의 수갑을 풀게 하거나 무죄를 주장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송강호 등 배우들의 제몫을 다한 열연도 그렇지만, 첫 장편영화인데 그렇듯 인간의 성선(性腺)을 콕 집어내는 양감독의 연출력 또한 미덥게 느껴진다. ‘변호인’은 ‘과속스캔들’(2008)의 강형철 감독이 세운 데뷔작 최고 관객 동원(822만 3266명) 기록을 갈아치웠다. 양우석 감독이 한국영화사를 새로 쓴 것이다.

  그러나 필자로선 불만도 있다. 송우석이 실제와 다른 허구로 알려진 국밥집 최순애(김영애)와의 인연으로 시국사건 변호인이 된 점이다. 그렇게 사적인 계기라면 너무 협의적 접근이 아닌가? 신의 등 인간적 면모의 부각인 듯하지만, 오히려 미화란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지 싶다.

  차동영(곽도원)의 머리도 너무 길어 보인다. 5공의 전두환이 잘한 것이 있다면 장발단속 해제이다. 그런데 차동영은 경찰이다. 경찰모를 눌러쓴 게 맞지 않을 정도라면 심각한 박진감 결여이다. 그때는 용공조작을 안기부(그전 중앙정보부, 지금의 국정원)가 하지 않고 경찰 단독으로 했는지도 의문이다.

/장세진 군산여상교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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