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청소년들의 사람됨의 위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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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청소년들의 사람됨의 위기<2>
  • 김정기
  • 승인 2014.02.19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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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청소년들을 미래세대요,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들을 한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한 사람도 없을 것으로 생각 한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요 희망인 그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 그들에게는 국가적 국민적 애정과 관심이 필요한데 과연 현실은 어떤가?
어쩌면 그들은 목 놓아 외치고 싶을지도 모른다. 미친 듯이 달려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럴 장소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청소년들을 위한 시설은 없다. 어른들이 사용하는 곳을 청소년들에게 이용하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청소년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또래다. 자기네들끼리 뭉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들이 또래들과 어울리도록 하되 건강하게 풀어낼 수 있도록 어른들이 곁에서 지켜보고 도와야 하는 것이다. 이래서 청소년 스포츠시설이나 그들만의 문화 공간이 필요하다.
 
또 어른들은 말한다. 요즘 청소년들은 대학입시 준비하느라 스포츠 활동할 시간이 없다고. 이러니 청소년 스포츠시설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이 역시 분통 터지는 소리다. 대학 입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청소년만 청소년이 아니다. 특성화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도 있고. 심지어는 일하는 청소년도 있다. 이들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나는 청소년이 유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청소년 스포츠시설이나 문화공간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약간 과도한 추측마저 해 본다.
 
미국의 교육제도 중에 부러운 것 가운데 하나가 대학들의 체육장학생제도이다. 우리나라의 체육특기생제도와는 다른 점이 많은 것 같다. 체육장학생제도가 다양하고 대학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해당 종목의 운동만 잘해서는 안 된다. 성적이 중위권 이상의 수준으로 유지가 되어야 한다. 대학 장학금을 바라보고 고등학교 시절 스포츠 활동을 열심히 하는 학생들도 꽤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학들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중. 고등학교 체육교육이 활발해지지 않을까.
정책의 현실성 여부를 떠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덕체`(智德體) 교육에서 신체를 단련하는 체육교육을 영원히 뒷전으로 돌려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 건강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고 궁극적으로 국민성과도 연결이 된다. 청소년기에 스포츠를 통해 단결력. 협동심. 양보심 등의 훌륭한 인성을 기르게 되면. 이것이 쌓이고 쌓여서 국민성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 아닌가?
청소년들이 PC방 같은 막힌 곳으로 갈 리가 없다. 몸에서 에너지가 솟는 청소년들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게임에 빠져 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폐쇄된 곳으로 가는 이유는 갈 곳이 없고 놀 거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동네에 적당한 운동장이 있고. 언제나 환영해주면서 따뜻하게 지도해주는 코치가 있다면 청소년들이 스포츠를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뉴스를 보다가 청소년들이 일으킨 범죄 소식을 들으면 늘 안타깝다. 그 아이들에게 적절한 환경이 제공되고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한다.
청소년 범죄는 따지고 보면 어른들의 탓이다.
요즘 청소년 범죄는 `묻지 마` 유형의 범죄가 많다고 한다. 과거에는 권위에 대한 반항에서 비롯된 일탈적인 행동이나 가난 때문에 비롯된 범죄가 많았다면. 요즈음은 뚜렷한 이유가 없으면서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유가 없을 수는 없다.
 
욕망을 부채질하는 시대이다. 자신이 처한 현실과 욕망의 간극 사이에서 균형을 못 잡는 청소년들은 화가 난다. 그러나 자신을 화나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청소년들은 무작위의 대상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다.
 
스포츠는 분노나 내재된 감정을 터뜨릴 수 있는 건전한 분출구다. 또. 이 스포츠를 어울려 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따라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분노나 감정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스포츠를 통해서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조절하는 것, `영수` 못잖은 중요한 과목이 아닌가.
 
모두들 청소년이 미래의 주인공 이라고 하지만, 실제 국가의 정책으로 청소년교육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하고 미비한 점들은 보완을 해 나가야 한다. 청소년들이 최선의 환경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의무이다. 또한 미래를 위해서 이만큼 확실한 투자는 없다. 

/김정기 한국정치사회 숲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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