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신씨 장수종친회, 상명공 시제 및 효자송와비 제막식 가져
상태바
고령신씨 장수종친회, 상명공 시제 및 효자송와비 제막식 가져
  • 신인식 기자
  • 승인 2016.11.01 18: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명공 시제 및 효자송(孝子松)와비 제막식이 고령신씨 장수종친회 등 후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일 장수읍 노곡리(상명공 영역)에서 진행됐다.

고령신씨 장수종친회에 따르면 상명공의 본관은 고령으로, 시조의 휘는 성용이고 관은 검교군기감(정4품직)이다.

귀래정공의 장손인 휘 공제공은 호는 이계, 시호는 정민이며 문과에 급제돼 외직을 두루 거치고, 각조 판서를 여러 해 거친 인물이다.
 

고령신문은 선대이래 효(孝)정신이 투철해 대대로 효자, 효부가 널리 배출된 것으로 그 유명세가 자자하다.
 
중시조인 귀래정공은 청백리로 사마시와 증광시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 대사간ㆍ전주부윤ㆍ창원 도호부사ㆍ경상우도 병마 절도사ㆍ전라 수군 절도사 등을 역임했다.

정부인 설씨 할머니는 문장과 필법에 능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권선문은 보물 제728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문과로 이조판서ㆍ의정부우참찬 등에 오른 이계공은 대한민국 보물 제526호로 지정된 해동명적(海東名蹟)을 1520년경에 석판으로 간행했으며, 광국원종공신2등에 훈록되시고 정민(貞敏)의 시호를 받았다.

또한 청백리로 조부모를 봉양코자 외직을 자청하기도 했다.
 
대를 이은 가풍은  장수 노곡리 출신 석모공으로 이어졌으며, 그 효행이 인근 많은 사람들을 감복시켜, 고종임금은‘동몽교관 조봉대부’교지를 내리고 정려를 세워 기리도록 했다.

한편 효자송(孝子松)은 그의 아들 3형제와 며느리까지 대를 이어 효자효부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고 해서 일컬어지고 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