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어느날, 아버지와 차를 타고 기숙사에 가는 중이었다.
석양이 은은하게 깔림에 따라 아버지의 얼굴도 빛나고 있었다.
문득 나는 우리집이 외식을 너무 자주하는것 같다는 말을 던졌다.
그 갑작스런 말에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셨다.
그러니깐 말야 요즘 식당들 먹잘것도 없더만. 옛날엔 다 시골서 농사짓고 장 담가서 먹고 살았는데, 인자는 레스토랑이니 뭐니해서 다 사먹쟎아 아버지의 표정은 어떤 감상에 젖어든듯 평화로웠다.
생각해봐라, 우리집도 할머니 안 계셨으면 외식뿐만 아니라 김치며 장이며 다 사먹지 않았겠냐?
우리집안은 아버지를 포함해 삼남매인데 모두가 할머니가 보내주시는 음식에 의존하고 있었다.
참, 그러고보니 젊은 애들 잘먹고 잘사는 것도 다 노인분들 덕이여, 허리 휘게 일해서 자식들 출가시키고 자식놈들은 용돈이랍시고 보내는 돈도 다 명절 한번 새고 나면, 다 적자여 적자 그 이유를 들어보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후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다. 이런 생각은 평소에 해본적이 없던터라 듣는 내내 얼굴이 벌개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달 남짓 흐른 뒤였다. 친구와 영화를 보자고 약속을 한 후 길을 가는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폐지가 수북이 담긴 수레를 끌고 계셨다. 끙끙대는 그 할머니를 그저 바라보기만 할뿐, 굳어버린것 마냥 그 누구도 선뜻 도우려 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생각나 그 할머니를 도우러 갔다. 영화냐 도움이냐에 대해 고민한 내 자신이 생각나 몸이 달궈졌다.
수레를 끌고 가는 동안에도 후회와 보람사이의 그 어딘가에서 감정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러나 고물상에 다다라서야, 그 등이 활처럼 휘어버린 할머니의 웃음을 보며, 아 내가 잘 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날 잠자리에 들 때에 다시 아버지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의 빛나던 두 눈과 함께, 낮에 본 할머니를 돕기 전 망설이던 것이 떠올라 다시 얼굴이 붉어졌다.